2014년 8월 20일 수요일

오복(五福)

오복(五福)
 
五福(오복)은 書經(서경) 周書(주서) 洪範篇(홍범편)에 나오는 문장

五福(오복)은 一曰壽(일왈수)요 二曰富(이왈부)요 三曰康寧(삼왈강녕)이오 四曰攸好德(사왈유호덕)이오
五曰考終命(오왈고종명)이니라. 이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는 것

첫째는 장수하는 것
둘째는 부유한 것
셋째는 신체가 건강한 것,
넷째는 좋은 德(덕)을 가진것,
다섯째는 일생동안 평안하게 살다가 天命(천명)을 마치는 것

수(壽)는 천수를 누리는 행복이다. 흔히들 이야기는 장수는 120을 아무 병 없이 살아가는 것으로
이 壽(수)야말로 이 오복의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 한다.
이 수가 있지 않고는 나머지 네 가지 福(복)을 누리거나 가질 수도 없다.
모든 것이 살아있어야만 되지 죽은 후에는 이루워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로 옛사람들 말에 "말똥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은 결코 부유하지 못해도 생명력이 있는 삶이 좋다는 뜻이다.

부(富)는 상당한 저축을 하며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행복을 말한 것이다.
물론 큰부자는 하늘이 낳아야 한다는 말도 있으나 이 大富(대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운명적으로 결정되여 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후천적인 사람의 인력에 의하여 이루어졌을 것이지
결코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다.
자급 自足(자족)으로 평안한 생활을 하며 남을 도울 수 있는 생활이면 이 복이 구비되었다고 하겠다.

康寧(강녕)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신체가 건강하고 무병하여
언제나 깨끗하며 마음에 불안이 없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흔히 연세가 많아도 건강하며 무병으로 깨끗하게 살고 있는 노부부가
함께 해로하는 것을 볼 수가 있으니 이를 두고 한 것이다.

攸好德(유호덕)은 好德(호덕)을 가지는 것이다.
이 좋은 덕을 가지려면은 자기일생동안 앞일을 계획하여서 덕을 쌓아야 한다.
곧 많은 공부를 해야한다. 고로 이 호덕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생을 두고 갈고 닦아야 한다.
예를 들면 성인 또는 현인의 位(위)에 있는 사람이 이 호덕을 가졌다고 하겠다.
물론 五福中 모두가 어렵고 貴重한 것이라고 하나 이 好德(호덕)이 가장 누리고 가지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 好德(호덕)을 가지기에 힘써야 할 것이다.

考終命(고종명)은 일생의 계획을 세워서 자기 명대로 살다가 마치는 것으로
우리는 흔히 자기가 받아온 천명을 살지 못하는 일이 많다.
불의의 사고나 비명으로 생명을 잃는 일이 많다.
이와 같은 일이 없이 자기가 설계한 일생의 계획 그대로 살다가 최후를 마치는 것을 말한다.


다음은 일반 백성들에게서 구전되어온 오복입니다.

1. 치아가 좋은 것
2. 자손이 많은 것
3. 부부가 해로하는 것
4. 손님을 대접할 만한 재산이 있는 것
5. 명당에 묻히는 것

쉽게 생각하고 쉽게 말한 내용들이 들어있는 오복 입니다.
쉬운만큼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오복... 쉬운 다섯줄의 가장 어려운 문장입니다.


2014년 8월 18일 월요일

어느 이십대의 유서

.....

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힘겨운 하루가 어서어서 지나가 다시 어둠이건 다시 끝없는 나락이건
어째도 좋으니 다시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그저 하루를 버티는데
그 하루는 너무도 길어서 내일이 오기까지 너무도 고통스럽게 나를 옥죈다.

나는 비겁하고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한심한 청춘이어서
더는 인생을 살아낼 그 무엇의 동기도 부여 받지 못했다.

모든 삶은 핑계로 연명되었고
모든 굴레는 남탓으로 굴러갔다.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했으니까...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공장 말단으로 시작한 인생이니깐...
더는 이 인생이 나아지질 않을테니까...

이러해서 이러하고 저러해서 저러하니 난 이러하고 저러하다.
하느님은 모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탓이로소이다. 가슴을 쿵쿵 치라 하셨지만
남탓만이 가슴속에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 탓이이오 내 탓이오...
가난한 것도 내 탓이고 한달 죽어라 벌어도 집세 내고 동생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그 와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빚도 갚아야하는... 그래서 
십원 한장 남지 않은 인생은 정녕 내탓이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없어 그 내탓마저도 잃고야 말았지.

양어께엔 중학교 3학년 짜리와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각각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내 무거웠으나 그래도 고놈들이 내 웃음이었고 내 하루였음을
나는 문득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했다.
내 양어께의 그 두놈을 난 꼭 붙들어 매고 놓지 않으려 힘을 주었고
악을 써댔지.

나없으면 이 어린 것들 인생은 나보다 더 모질게 구겨져 다시는 깨끗하게 펴질 수나 있을까.
생각하면 오소소 소름이 돋아 나는 한대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번쩍하였는데
어째서 그 어린것들은 이런 나를 두고 먼저 떠났을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하더니 정녕 그리하여 나를 떠난 것인지.
나는 그나마의 희망도 놓쳐버렸네.

핑계와 남탓 뿐이던 인생에 올곧은 뿌리 두개가 사라지니
나는 더는 살 수가 없어 또 어린것들 핑계를 대며 비굴한 인생을 파하네.

내가 9살 적 집을 나간 어머니가 보고싶소.
내 딱 스물 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도 보고싶소.
작년에 그리 허망하게 간 그 두놈도 보고싶소.

보고 싶은이들은 저세상에 천지고
이생엔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으니
나는 나를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그만 가려고 하네.

하늘에는 부디 가난도 귀천도 없이 모두가 존귀하여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네. 스스로 끊어버리는 목숨이라
나는 지옥행 입구로 곧장 불려 가겠지만 가기 전에 한번은
저 그리운 이들 보고나 가게 해 달라 마지막 간청일랑 드려야겠다.

하루가 너무 길어 나는 그만 갑니다.
어찌도 이리 하루가 긴지 살아내느라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그려.



-작자미상, 어느 이십대의 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