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8일 월요일

어느 이십대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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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느리게 흘러간다.
힘겨운 하루가 어서어서 지나가 다시 어둠이건 다시 끝없는 나락이건
어째도 좋으니 다시 내일이 오기를 바라며 그저 하루를 버티는데
그 하루는 너무도 길어서 내일이 오기까지 너무도 고통스럽게 나를 옥죈다.

나는 비겁하고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한심한 청춘이어서
더는 인생을 살아낼 그 무엇의 동기도 부여 받지 못했다.

모든 삶은 핑계로 연명되었고
모든 굴레는 남탓으로 굴러갔다.

가난해서 대학을 가지 못했으니까...
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니까...
공장 말단으로 시작한 인생이니깐...
더는 이 인생이 나아지질 않을테니까...

이러해서 이러하고 저러해서 저러하니 난 이러하고 저러하다.
하느님은 모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탓이로소이다. 가슴을 쿵쿵 치라 하셨지만
남탓만이 가슴속에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내 탓이이오 내 탓이오...
가난한 것도 내 탓이고 한달 죽어라 벌어도 집세 내고 동생들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고
그 와중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기신 빚도 갚아야하는... 그래서 
십원 한장 남지 않은 인생은 정녕 내탓이오.

그럼에도 나는 운이 없어 그 내탓마저도 잃고야 말았지.

양어께엔 중학교 3학년 짜리와 고등학교 2학년 짜리가 각각 엉덩이 붙이고
앉아 내 무거웠으나 그래도 고놈들이 내 웃음이었고 내 하루였음을
나는 문득 생각하고 잊지 않으려 했다.
내 양어께의 그 두놈을 난 꼭 붙들어 매고 놓지 않으려 힘을 주었고
악을 써댔지.

나없으면 이 어린 것들 인생은 나보다 더 모질게 구겨져 다시는 깨끗하게 펴질 수나 있을까.
생각하면 오소소 소름이 돋아 나는 한대 얻어 맞은 듯 정신이 번쩍하였는데
어째서 그 어린것들은 이런 나를 두고 먼저 떠났을까.

엄마 아빠가 보고 싶다 하더니 정녕 그리하여 나를 떠난 것인지.
나는 그나마의 희망도 놓쳐버렸네.

핑계와 남탓 뿐이던 인생에 올곧은 뿌리 두개가 사라지니
나는 더는 살 수가 없어 또 어린것들 핑계를 대며 비굴한 인생을 파하네.

내가 9살 적 집을 나간 어머니가 보고싶소.
내 딱 스물 되던 해 돌아가신 아버지도 보고싶소.
작년에 그리 허망하게 간 그 두놈도 보고싶소.

보고 싶은이들은 저세상에 천지고
이생엔 나를 기억하는 이가 없으니
나는 나를 기억하는 이들을 찾아 그만 가려고 하네.

하늘에는 부디 가난도 귀천도 없이 모두가 존귀하여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네. 스스로 끊어버리는 목숨이라
나는 지옥행 입구로 곧장 불려 가겠지만 가기 전에 한번은
저 그리운 이들 보고나 가게 해 달라 마지막 간청일랑 드려야겠다.

하루가 너무 길어 나는 그만 갑니다.
어찌도 이리 하루가 긴지 살아내느라 너무 지쳐버렸습니다 그려.



-작자미상, 어느 이십대의 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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